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호(朴奉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8339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박봉호 일병은 1931년 4월 1일에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감행하던 1950년 10월 25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수색대에 배치되었다.
박봉호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1월 하순, 국군과 유엔군은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으나, 이번에도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큰 피해를 받고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시작했다. 당시 제6사단은 선두부대가 10월 26일에 압록강 변의 초산을 점령했다. 이때 동림산 일대에 숨어 있던 중공군이 아군의 후방을 차단한 후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큰 피해를 받고 10월 27일부터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 철수해야 했다. 당시 수색소대는 북진작전 간에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에 관한 정보를 사단에 제공하여 적을 섬멸하도록 했다. 그러나 유엔군 전체가 철수하게 되자, 수색소대도 포위망을 돌파하면서 130km의 험준한 산길을 따라 철수하여 10월 31일에 개천에 도착했다.
제6사단은 11월 14일에 평남의 영원-덕천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부대정비를 한 후 11월 24일을 기해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으나, 이번에도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결국은 38도선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12월 11일에 전곡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차후 있을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진지구축에 집중했다.
박봉호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곧 예상되는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예상한 대로 서울을 목표로 총공세를 펼쳤다. 제6사단은 전곡 일대 방어진지에서 적의 공격을 격퇴했으나, 이후 인접부대가 돌파되자,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에 의정부를 거쳐 서울 창동으로 철수했다. 수색소대는 적진에 남아 적 후방을 교란하여 적의 진출을 지연시키고 마지막으로 철수했다. 이날 그는 적의 습격을 받고 돌파를 시도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2-ㅍ-08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