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호(朴奉浩)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3505664
  • 전몰일자 : 19520522

공훈사항

박봉호 이등중사는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봉호 이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두포리-금곡리-무건리 선에 배치되어 적의 돌파구 확대를 저지하였다. 1951년 1월 4일 예기치 못하였던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서울을 향해 시작되면서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하였고 사단 작전명령에 의해 1951년 1월 말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였다. 박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작전에 참전하여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그 후 사단은 38도선 부근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였고 고양 임진강 전투에서 북한군과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였다. 중공군은 또 한 차례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4월 22일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다. 이후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캔자스선상의 영평을 확보할 목적으로 사단을 문산 축선에 투입하여 병진공격을 개시하였다. 다음날(21일) 박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문산천 북쪽의 가좌현 부근에 배치된 적의 박격포와 중화기 사격을 받아 문산천 도하에 실패하였다.
1951년 12월 28일-1952년 1월 8일간에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사단과 중공군 간에 전초진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박봉호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전초진지 쟁탈전에 투입되어 주저항선을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연하는 선으로 추진하여 북한군과 대치하였고, 달려드는 북한군을 상대로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혼신의 혈전을 벌인 끝에 이를 격퇴하였다. 1952년 연대는 2월에 접어든 뒤에도 여전히 대규모 공격작전을 보류했으며 정찰과 기습을 통해 북한군과 계속 접촉을 유지하고 방어진지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다만 아군의 경계선 및 주저항선의 요부에서 소규모 공방이 계속되었다.
박 이등중사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북한군을 물리치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봉호 이등중사는 1952년 5월 22일 고양대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호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4-ㅇ-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