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호(朴鳳浩)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803

공훈사항

박봉호 경사는 1927년 2월 10일 전남 해남군 문내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보성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장흥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여 파죽지세로 남진하자 전남도경은 비상경비체제로 전환하고 도내 관할 경찰관서로 하여금 전투태세에 돌입하도록 했다. 보성경찰은 보성의 주요 시설 경비, 벌교-보성, 보성-순천, 보성-장흥을 잇는 주요 도로 경비,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 제6사단이 7월 20일 전주, 장성, 광주를 점령하였으며, 7월 24일에는 적 제6사단의 선발대가 보성 전방에 진입하면서 경찰전초를 격파했다. 보성부대는 하는 수없이 주력을 철수시키고 후위만을 남겨 적정을 수집하도록 하고 장흥으로 철수했다. 박 경사는 보성경찰부대의 후위로 편성되어 수 명의 경찰병력과 함께 보성에 남아 적의 동향을 파악하며 게릴라전으로 적에게 타격을 주었다.
7월 25일 보성에 진입한 적이 휴식 중이라는 정보에 따라 강진서장 조석원 경감은 각 서(署) 부대를 통합 지휘하여 보성의 적을 기습하고자 북으로 기동했다. 7월 26일 미명을 기하여 구서칠 중화기부대와 장흥·강진부대와 보성경찰의 박 경사 일행은 3개 방면에서 적을 포위 기습하여 적 사살 30명, 생포 1명, 사이드카 2대, 따발총 2정 등을 노획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 전투 후 장흥·강진부대는 강진으로 철수하였고, 박 경사 일행은 장흥으로 철수하여 보성경찰 본대와 합류했다.
8월 3일 적이 강진과 장흥을 향해 진격했다. 박 경사는 장흥에서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집중사격에 의해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호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ㄲ-01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