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현(朴鳳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17446
  • 전몰일자 : 19511019

공훈사항

박봉현 일병은 1929년 11월 13일에 전라남도 나주군 공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대규모 공격을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한 1951년 5월 27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봉현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6월 말, 제6사단은 백암산 일대를 좌우로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당시 소련의 유엔 대표 말리크가 6월 23일에 휴전을 제안하고 유엔군도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전선에서는 전투가 사라지고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쌍방은 추후 상대방의 공격을 대비하여 방어진지 보강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산군은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면서 군사력 증강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에 유엔군 사령관은 공산군을 휴전협상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군사적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각 부대에 방어지역 전방에 대한 공격작전을 실시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박봉현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사단 명에 의거 백암산 전방에 위치한 등대리 부근의 819고지-462고지를 공격했다. 이 지역은 아군 방어지역을 관측할 수 있는 곳으로 적들의 전초기지가 운용되고 있었다. 연대는 8월 31일에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중공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9월 1일까지도 점령하지 못했다. 이에 연대는 부대정비를 한 후에 9월 21일에 재차 공격하여 28일에 목표(819고지)를 탈취했다.
제6사단은 더 나아가 금성천 부근을 장악하기 위해 10월 13일에 백암산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제7·제19연대가 먼저 공격하였고, 박봉현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사단의 예비로서 전방연대를 후속하다가 10월 16일에 전방연대를 초월하여 중공군을 격파하고, 21일에 교암산(770고지)까지 진출했다. 그는 10월 19일 공격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육35362호)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43판-3면-26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ㅎ-06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