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한(박봉한)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7298
  • 전몰일자 : 19501102

공훈사항

박봉한 일병은 1933년 7월 20일에 충청남도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7월 중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24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봉한 일병이 전입했던 때 8월 23일, 미 제24사단은 미 제8군의 예비로서 삼랑진 일대에 위치하며 투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에 사단은 8월 18일에 영산 및 창녕의 낙동강돌출부에 상급부대로부터 지원받은 가용예비대를 모두 투입하여 수차례에 걸친 공방전 끝에 북한군을 낙동강 서쪽으로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사단은 8월 20일에 작전지역을 미 제2사단에게 인계하고, 사단은 삼랑진으로 이동하여 미 제8군의 예비가 되었다.
그러던 중 박봉한 일병이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8월 27일에 기계-안강 지역이 돌파될 위기에 처하자, 신속히 경주 지역으로 투입되어 무릉산~곤계봉을 점령하여 이곳에서 격렬한 공격을 가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꺾었다. 북한군은 9월 12일부터는 반격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방어로 전환했다.
유엔군은 9월 16일부터 총반격작전을 개시하였다. 미 제24사단 장병들은 김천-영동 방향으로 적들을 추격하여 9월 28일에는 대전을 탈환했다. 이후 미 제1군단의 조공으로 10월 14일 야간에 문산 일대에서 임진강을 건너 연안-해주-재령 방향으로 공격하여 18일에 재령을 탈환하고, 19일에는 온정을 탈환함으로써 황해도 일대를 완전 점령했다. 한편 이날 국군 제1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은 평양을 탈환했다.
미 제24사단은 10월 20일에 미 제1기병사단을 초월하여 숙천-신안주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24일에는 청천강선을 확보했다. 그리고 10월 25일 유엔군의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 시에 청천강을 도하하여 박천에서 정주-선천 방향과 태천-구성 방향으로 나누어 공격했다. 박봉한 일병이 소속된 미 제5기병연대는 태천-구성 방향으로 공격하여 순조롭게 진출했으나,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청천강 이남으로 철수했다. 그는 11월 2일에 청천강선으로 철수 중 적으로부터 습격을 받았으나, 치열한 전투로 격퇴하고 돌파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32면-1727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7-ㅅ-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