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학(박봉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704945
  • 전몰일자 : 19500818

공훈사항

박봉학 일병은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22일 육군에 입대하여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출생지 및 출생 일자 미상).
박봉학 일병이 소속된 제1사단은 7월 13일 미원 북방에서 방어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북한군 제15사단이 괴산에서 부대정비를 마치고 16일 미명 미원 북방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부흥리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박 일병과 연대 장병들이 한때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북한군의 진출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고 저지하였다. 그러나 북한군 제2군단의 집요한 공격에 밀려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다시 미원 남쪽으로 진지를 전환하였다. 이어 7월 21일 전선 정리계획에 따라 춘양으로 진출하려던 중 화령장의 상황이 확대되자 보은에서 화령장으로 투입되어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박봉학 일병이 소속된 제1사단은 24일까지 적을 저지하다가 상주 북쪽에서 미 제25사단 제24연대가 화령장에 도착하자 다음날 작전지역을 인계하고 상주로 이동하였다. 이후 제1사단은 군단 재편성에 따라 제2군단으로 전환되어 함창으로 전진하였다.
함창에서 북한군을 저지하고 있던 박 일병과 장병들은 8월 1일 야음을 이용하여 낙정리로 이동, 왜관에서 낙정리까지 도상거리로 42km 정면을 담당하는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다음날(2일) 제12연대의 엄호 아래 나루터에서 선박으로 낙동강을 도하 하여 3일 저녁까지 신진지의 점령을 완료하였다. 주 접근로를 담당한 박 일병과 사단 병력은 낙정리 부근으로 도하 하는 적 제13사단을 몇 차례 격퇴시켰으나, 적의 도하가 본격화되자 방어 정면이 너무 넓은 데다가 북쪽이 돌출되어 있어 방어선의 유지가 어려워졌다. 박 일병과 장병들은 5일부터 적 제13사단 주력의 총공격을 받기 시작하여 낙산동 일대의 고지가 일시 피탈되었으나 과감한 역습을 전개함으로써 적을 격퇴하였다. 이후 사단은 11일부로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박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용맹을 발휘했다. 최후까지 용감히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박봉학 일병은 1950년 8월 18일 다부동 전투에서 푸른 청춘의 꿈을 남겨둔 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학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7판-1면-35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ㅍ-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