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학(朴鳳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2977
  • 전몰일자 : 19510105

공훈사항

박봉학 일병은 1931년 7월 20일 경상북도 대구시 효능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0년 9월 초순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 9월 공세를 맞아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과 뺏고 뺏기는 혈전을 거듭하고 있었고, 제3연대는 9월 3일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경주 서쪽의 무릉산 일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연대는 이곳에서 수류탄전과 백병전을 거듭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진지를 지켜내고 13일 결국 적을 격퇴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의 마지막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사단은 추격작전 때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7일 청량리에 도착했다.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한 연대는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까지 진출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비호산 일대에서 방어로 전환했다. 11월 3일 연대는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받았고, 연대 장병들은 7일까지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하고 비호산을 지켜냈다.
11월 14일 연대는 덕천으로 진격했고,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연대는 26일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 제38군과 제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연대는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12월 15일까지 승호리-신계-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춘천 부근의 38도선 일대에 진지를 편성하고 방어준비에 매진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상급부대 계획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일병은 진지를 사수하며 용감히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951년 1월 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학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01판-2면-16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1-ㅋ-03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