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필(朴鳳弼)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9348
  • 전몰일자 : 19500825

공훈사항

박봉필 일병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50년 초순, 경기도 수색의 제1사단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3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연대는 3대대에게 38도선 경비를 담당하게 하고, 제1·2대대에게 문산 일대에서 교육훈련을 하도록 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기습적인 침략을 감행했을 때, 제1사단은 적이 평소에 하던 도발과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공격임을 느꼈다. 적의 강력한 포병화력으로 피해가 속출하고 전차 기동에 심리적 마비가 오고, 상급부대와 통신이 두절되자, 박봉필 일병이 소속된 제3대대 장병들은 진지에서 철수하여 임진강을 건너 연대의 예비가 되었다. 이후 연대는 6월 27일 새벽에 최후저항선인 봉일천 지역으로 철수하여 도내리-신산리에서 6월 28일 오전 8시까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전개했다. 그 시각에 한강교는 이미 폭파되었고, 적 전차는 서울 시내로 진출했다는 급보를 전해 듣고, 연대 장병들은 행주와 이산포에서 한강을 건너 철수했다.
제1사단은 7월 3일에 판교-금곡리-풍덕천-수원 축선에서 북한군 제3사단의 수원 진출을 지연시켰다. 이후 제13연대는 재편성과정에서 제15연대 장병들을 흡수했다. 연대는 7월 8일 음성에 도착하여 제6사단 7연대로부터 방어지역을 인수하여 적 제2사단의 진출을 12일까지 지연시켰다. 23일 야간에 보은을 거쳐 화령장 남쪽 2km 지점의 봉촌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제17연대와 함께 북한군 제15사단의 진출을 지연시키고, 25일에 함창으로 이동하여 연대는 제15연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제15연대는 7월 31일에 제6사단의 철수를 엄호하고, 8월 1일에 낙동강을 도하여 왜관 북방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제1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의 8월 공세’를 맞아 왜관 북방 303고지-다부동 선으로 이동하여 신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대구를 공략하려는 북한군 3개 사단을 상대로 장병들과 함께 8월 말까지 낙동강 방어선에서 혈전을 벌인 끝에 이를 격퇴함으로써 위기에 빠진 전황을 타개했다. 박봉필 일병은 8월 25일 다부동전투에서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1판-1면-02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2-ㄱ-04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