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철(朴奉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303838
  • 전몰일자 : 19530625

공훈사항

박봉철 일등중사는 전라북도 전주시 교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8년 4월 1일에 대전의 제2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6월 12일부로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홍천으로 이동하여 제8연대로부터 홍천 북방의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제6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았으나 홍천 북방에서 3일간 지연시키고 홍천에서 철수하여 횡성-원주-충주-이화령 축선에서 7월 말까지 북한군의 공격을 지연하고, 신녕 북방의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8월 및 9월 공세를 격퇴했다. 유엔군은 9월 15일에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9월 16일에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하여 불과 40여일 만에 압록강변까지 진출하였고, 이때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였다. 이때 제6사단은 동두천 북방에 진지를 편성했다.
제6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진지에서 철수하여 장호원 일대에서 방어로 전환했다. 이후 중공군의 2월 공세, 4월 공세, 5월 공세를 격퇴하고 5월 20일에 용문산으로부터 반격하여 6월 15일에는 백암산까지 진출했고,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이후 공산군이 군사분계선 설정 문제로 휴전협상을 지연하자, 이때마다 유엔사는 군사적 압박이 필요하다고 보고 각 부대에 공세적인 작전을 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박봉철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금성천 부근을 장악하기 위해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공격하여 이 일대를 감제할 수 있는 교암산(770고지)까지 탈취했다. 이후 사단은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쳐 1952년 3월 22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부근으로 이동하여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2연대는 6월 11일에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금성천 동북방 A, B고지)에 대해 공격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6월 15일 탈취했다.
박봉철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1953년 1월 1일부로 사단의 예비로 전환했다가 2월 5일부로 다시 우일선(동쪽)의 전방방어지역인 교암산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제8사단 지역이 6월 10일부터 중공군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하자, 제2연대는 6월 13일부로 제8사단에 배속되어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 6월 16일에 사단으로 복귀하여 봉화산-442고지 방어진지를 담당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6월 25일에 전초기지로 수색정찰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철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9판-1면-16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ㄲ-09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