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찬(朴奉讚)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07549
  • 전몰일자 : 19511101

공훈사항

박봉찬 일병은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1년 2월 중순에 부산에 설치된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동년 3월 하순에 제2사단 제17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봉찬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 제2사단은 안동 부근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적 게릴라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4월 초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하고 4월 28일에 전방지역인 청평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제2사단은 이곳에서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서울 북방-마석-용문산-홍천-하진부리-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하고, 5월 20일을 기해 군단계획에 의거 미 제24사단의 가평 진출을 엄호하고, 5월 24일 오전 7시에 일제히 공격했다. 미 제9군단은 5월 31일까지 전곡-철원-김화-화천을 잇는 와이오밍 선을 확보했다. 박봉찬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사창리-다목리-김화에 이르는 계곡통로의 우측 능선을 따라 공격하여 6월 14일에 적근산(1073고지)을 확보했다.
이후 사단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유엔사령부의 작전지침으로 8월 2일에 방어선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공격하여 탈환했다. 그러나 피아간의 뺏고 빼앗기는 고지쟁탈전은 8월 8일까지 계속되었으며, 결국 적의 역습으로 인해 다시 빼앗겼다. 이에 아군은 9월 1일부터 재차 공격을 시작하여 3일까지 격렬한 전투 끝에 고지를 탈환했다. 이후에는 전선은 소강상태에 들어갔고,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정찰 활동에 집중했다.
제2사단은 미 제9군단의 김화-금성 진공작전계획에 의거 10월 13일부터 공격을 개시했다. 박봉찬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사단의 주공으로서 전차 중대를 배속 받아 적근산 북쪽 기슭에서 출발하여 10월 18일에 금성 서남쪽 직목동과 522고지를 탈취하고 작전을 종료했다. 이후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사단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정찰 활동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소대는 11월 1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5판-7면-26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ㅌ-09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