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진(朴奉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22029
  • 전몰일자 : 19501212

공훈사항

박봉진 일병은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경 육군에 입대하여 제2048부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군은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없는 상태에서 절대적으로 열세한 전투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전쟁 발발 첫날 전방 진지들이 돌파당했다. 국군은 가용한 예비부대들을 의정부 축선과 문산 축선에 투입하여 수도 서울을 방어하려 했지만 적의 전차를 막지 못해 전선을 돌파당하고, 6월 28일 결국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했다. 국군은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편성하고, 철수하는 병력을 수습하여 한강방어선에서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적의 공격을 지연했다.
7월 초순 미군이 참전함에 따라 유엔군이 구성되었고, 유엔군은 금강 선-소백산맥 선으로 축차적인 지연전을 전개했다. 북한군이 아군 방어선을 돌파하여 계속 남하함에 따라 유엔군은 8월 1일부터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하여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8·9월 공세를 물리침으로써 국가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9월 15일 시행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유엔군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고, 20일 평양을 탈환한 후, 10월 하순에는 한·중 국경선 부근까지 북진했다. 하지만 중공군이 참전하고, 함경남도 운산과 청천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차 공세에서 큰 피해를 보았다.
미 제8군은 11월 28일 우익은 국군 제2군단을 성천-양덕 일대로, 중앙의 미 제9군단을 안주-군우리 일대로, 좌익의 미 제1군단을 신안주 일대로 철수시켜 차기작전을 준비했다. 12월 2일 중공군이 안주와 신창을 점령하고 계속 순천 동남쪽으로 진출했고, 유엔군은 평양으로 철수했다. 이후 유엔군은 38도선으로 단계적으로 지연전을 실시하며 철수했다. 박 일병은 지연전 과정에서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2월 12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4-ㅍ-05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