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진(朴鳳鎭)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824

공훈사항

박봉진 경사는 1923년 11월 11일 충남 보령군 만포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남도경 청양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대전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박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북한군은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한 후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여 파죽지세로 남진했다. 충남경찰 비상경비사령관은 예하 경찰관서에 특별경계로 적의 오열과 지방공비를 색출하도록 지시했다. 충남경찰은 군의 요청에 따라 경부선 주보급로 경비 임무를 수행했으며, 7월 11일 제1대대(충남·서울경찰)를 청양에, 제2대대(충남·경기경찰)를 홍산에 배치하여 청양-대천 선에서 군과 함께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청양경찰이 소속된 제1대대는 예산 방면에서 남진 중인 적 유격대를 급습하여 20명을 생포했고, 홍성군 산성면에서는 적과 교전하여 포로 50명, 사살 2명의 전과를 거두었다. 이후 청양경찰은 북한군이 남진함에 따라 7월 13일 대전으로 후퇴했다.
북한군의 남진으로 7월 20일 대전이 함락되자 청양경찰은 미처 퇴각하지 못하고 대전에 잔류하여 게릴라전을 펼치며 적을 타격하는 한편 적군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8월 24일 대전형무소에 아군 포로들이 상당수 잡혀있다는 정보에 따라 청양경찰병력을 비롯한 60여 명의 경찰이 대전형무소를 급습했다. 약 1시간 동안의 교전 끝에 대전형무소에 배치되어 있던 적 20여 명을 사살했으나 경찰 역시 많은 피해를 입고 후퇴했다. 박 경사는 이날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공격하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진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ㅇ-06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