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준(朴奉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016217
  • 전몰일자 : 19501113

공훈사항

박봉준 일병은 경상북도 영월군 동해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봉준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낙동강 남쪽인 반변천 일대에 북한군과 교전하면서 1950년 8월 3일 길안과 청송으로 철수하였다. 그때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의성으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의성-영덕 간 50㎞에 달하는 공백이 발생하자, 국군의 저항을 전혀 받지 않고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박 일병은 16일 연대병력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기계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박 일병과 사단 장병들은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반격으로 전환하였다. 그는 북한군 제12사단이 비학산 일대에서 공격해 오자, 9월 4일 안강을 포기하고 경주 북방에 있는 낙산(호명리)으로 철수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9월 말 양양까지 진격하면서 38도선을 회복하였다. 이어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하였다. 그는 10월 10일 원산을 탈환한 후 함경북도 길주까지 진격하였다. 11월 중순경 백암-청진 선으로 진출하여 두만강 진출을 목전에 두었다.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청진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부거로 진출하고 있었다. 수일 전까지만 하여도 군단 정면의 적정은 경미하였으나 중공군의 2차 공세가 시작되면서부터 이 지역에서도 북한군이 반격해 오는 등 서서히 적정이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박 일병을 비롯한 장병 모두는 용기백배하였다.
박 일병이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봉준 일병은 1950년 11월 13일 백암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4-ㅎ-01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