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조(朴鳳祚)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7935
  • 전몰일자 : 19500914

공훈사항

박봉조 일병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초 제3여단 제6연대에 입대했다. 제6연대는 1948년 11·12월 발생한 연대 내 좌익세력의 반란사건으로 1949년 4월 15일 해체되고, 제22연대로 개칭되었다.
6·25전쟁 발발 이후 제22연대는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 제3사단에 편성되어, 7월 1일 금곡리에서 북한군 제3사단과 일전을 벌여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연대는 7월 4일 제1사단에 배속되어 풍덕천 일대의 188고지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적의 압도적인 공격에 밀려 수원, 천안 일대로 분산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연대는 조치원-청주-보은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동해안 축선의 위협이 증가됨에 따라 연대는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57호에 의거 제3사단으로 원대 복귀했고, 23일 대구로 이동하여 재편성을 했다. 7월 24일 영덕 남방의 강구에 도착한 연대는 26일 제3사단의 역습명령에 따라 강구 북방의 181고지와 207고지를 탈취하고, 곧이어 30일 제23연대가 탈취당한 영덕을 다시 탈환했다. 이후 8월 7일까지 연대는 이 일대에서 피·아 간에 뺏고 뺏기는 혈전을 계속했으나, 8월 8일 적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강구 남쪽으로 철수했다.
제3사단은 9월 2일 시작된 북한군 9월 공세에 밀려 9월 7일 형산강 변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연대 장병들은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뺏고 뺏기는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최후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이 전투에서 박봉조 일병은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며 진지를 지켜내다 9월 14일 북한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0판-4면-02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2-ㄹ-01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전사자 명부에는 소속이 제6연대로 되어 기록되어 있으나, 동 연대는 전쟁 발발 이전에 해체되어 제22연대로 개칭되었으므로 오기로 추정하여 제22연대로 조정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