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조(朴鳳祚)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41806
  • 전몰일자 : 19500928

공훈사항

박봉조 일병은 1930년 7월 7일에 경상북도 월성군 양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에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에 대구에 설치된 육군 제1훈련소로 입소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8월 30일에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봉조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 제17연대는 포항지구전투사령부 소속으로서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어 북한군 제12사단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만약 기계-안강 지역이 돌파당하면 북한군이 바로 경주-부산으로 진격하여 전쟁이 종결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은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제17연대는 9월 3일까지 기계-안강 지역을 사수하여 북한군의 8월 공세를 저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9월 2일에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여 기계-안강 방향으로 진출했다. 적들은 당일에 기계를 탈취하고 9월 5일에 안강을 탈취했다. 그리고 포항 방면의 북한군 제5사단과 함께 경주 방향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연대 장병들은 안강을 적에게 내어주고 곤계봉-호명리 선으로 철수했다. 박봉조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곤계봉을 두고 적들과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으며, 9월 13일에 안강 지역에서 최대 격전지였던 곤계봉 탈환에 성공하여 안강 남쪽의 주저항선을 회복하고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이후 제17연대는 영광스럽게도 육군 중에서 유일하게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발되어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이후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9월 18일에 인천으로 상륙한 후에 영등포 남쪽으로 기동하여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하고자 했다. 연대는 9월 25일 오후 2시에 미 제32연대에 이어 신사리에서 서빙고로 한강을 도하했다. 박봉조 일병은 장병들과 함께 도하 즉시 남산으로 진격하여 적의 경미한 저항을 물리치면서 보광동 일대와 매봉(174고지), 그리고 무학여고가 내려다보이는 고지 일대까지 진출했고, 9월 27일까지 망우리ᐨ면목동 일대에 진출하여 퇴각하는 적의 전차 10대를 노획했다.
박봉조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9월 28일 아침 잔적을 소탕하며 서울 중심지로 입성하여 밤 12시를 기해 중앙청 및 경무대 경비 임무를 한국 해병대로부터 인수했다. 연대는 서울 시내로 진입하면서 잔적 소탕을 실시했는데,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탕작전 중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7-ㅌ-01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