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조(朴奉祚)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K1110628
  • 전몰일자 : 19510210

공훈사항

박봉조 상병은 부산시 영도구 대평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박 상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8월 16일 군에 입대하여 카투사(KATUSA)에 선발되었다.
박 상병은 미 제25사단에 배치되어 첩보수집, 포로신문, 편의대 활동 등으로 사단의 작전에 기여하다, 1950년 10월경 제3사단 제22연대로 전속되었다. 제3사단은 미 제10군단의 안전한 원산 상륙을 보장하기 위해 원산 외곽선을 확보하고 잔적을 소탕했다. 10월 26일 원산에 상륙한 미 제1해병사단에 경계임무를 인계한 연대는 11월 4일 신북청으로 북상했다. 11일 연대는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하여 30일 연대의 선두부대가 한·중 국경선의 혜산진에 도달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성진-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공격에 맞서 분전했으나 진지를 돌파당했다. 1951년 1월 4일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포기하고 수원-이천-원주 선까지 철수하게 되었고, 이때 연대도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 무렵 국군 철수과정에서의 부대간격을 이용하여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영주 방향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이에 제3군단은 군단 예비로 춘양에 집결 중이던 제3사단을 1월 14일 영주군 남대리 방면으로 추진하여 영월 일대의 제7사단과 함께 남북에서 협공을 펼치게 했다. 남대리 일대에 침투한 북한군은 제2군단 예하 제31사단이었다. 이 전투에서 제22연대는 주실령(남대리 남동쪽 8km)을 점령하고 적을 격멸했다. 이로써 북한군 주력부대는 큰 타격을 입고 영월 방면으로 퇴각했다.
2월 5일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3군단이 라운드업 작전을 전개하여 반격했고, 이때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반격을 실시하여 2월 10일 평창으로 북상하여 횡성 동북방의 제5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이 전투에서 박 상병은 분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진격하다 2월 10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조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40판-7면-26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ㅍ-03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