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재(朴鳳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52725
  • 전몰일자 : 19501101

공훈사항

박봉재 일병은 1922년 9월 26일 경상북도 달성군 동촌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격퇴하고 있을 때인 1950년 9월 4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봉재 일병은 팔공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윤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편성에 주력하였다.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가산(902m)은 중요한 감제고지로서 다부동-대구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로써 가산을 탈환하여야 하였다. 사단은 기병사단과 협조하여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며 9월 14일에는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였다.
낙동강에서의 역사적인 반격작전은 1950년 9월 16일 오전 9시에 시작되었다. 윤 일병과 연대병력은 중앙의 계곡 접근로와 동측방의 군위로 이르는 도로를 이용하여 신속히 북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이어 유학산 북방의 천생산을 점령하고 적을 소탕한 데 이어 대구에서 상주로 나아가는 도로상 옥골까지 진출하였다.
박봉재 일병과 연대병력은 10월 9일에 고랑포를 출발하여 접적 없이 동북쪽으로 진격, 38도선 북쪽에 위치한 마전리를 점령한 후 19일에는 평양에 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윤 일병과 장병들은 10월 23일 안주 일대에서 청천강을 도하한 후 24일 운산으로 진출하기 위한 중간목표인 영변과 용산동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어 10월 25일 아침 운산공격이 개시되었다. 박봉재 일병과 연대병력은 영변에서 구룡강 동측을 따라 공격하여 일부 경미한 북한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운산시내로 돌입하였다. 윤 일병과 장병들은 운산에서 수풍호로 진출할 목적으로 군단에서 배속된 전차를 앞세우고 2개 연대병진 대형으로 북진작전을 전개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봉재 일병은 1950년 11월 1일 마장리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3판-4면-18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ㅌ-04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