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윤(朴奉允)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47486
  • 전몰일자 : 19530714

공훈사항

박봉윤 일병은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4차 공세(일명 ‘2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한 1951년 3월 말에 제주도 모슬포에 있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 병으로 차출되어 미 제24사단 제5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봉윤 일병이 소속된 제5연대는 원래 하와이에 주둔하고 있던 독립 연대전투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주둔군 외 부대로서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증원된 부대였다. 미 제24사단은 3월 7일 반격작전(일명 Ripper작전)에 참가하여 31일에 가평을 탈환했다. 계속 반격작전(일명 Rugged작전, Dauntless작전)을 개시하여 4월 9일에 화천-광덕산을 연하는 선(일명 캔자스선)에 도달했다. 얼마 후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양수리까지 철수했다가 다시 반격하여 가평까지 진출했다.
미 제24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맞아 다시 가평 남쪽의 북한강 동쪽까지 철수했다. 이후 유엔군이 5월 24일부터 대대적인 반격작전을 개시할 때, 사단 장병들은 가평에서 시작하여 31일에는 화천호를 탈환하고, 군단의 예비가 되어 사창리 부근에 집결하여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고, 이는 1952년 봄까지 계속되었다.
미 제24사단은 1952년 2월에 김화 북방의 방어진지를 미 제40사단에 인계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부대정비를 실시했다. 미 제24사단은 6·25전쟁에 제일 먼저 참가하여 그동안 치열한 전투를 많이 치루었기 때문에 정비가 필요했다. 이때 미 제24사단에 소속된 카투사 병력들은 미 제40사단으로 전속되었다.
미 제40사단은 1952년 말까지 계속된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실시한 후 전선을 정비하고 있었다. 박봉윤 일병이 소속된 제223연대는 방어진지를 점령한 상태에서 진지보강과 교육훈련, 그리고 적 침투를 방지하기 위한 수색 및 매복작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소대는 1953년 7월 14일에 방어지역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윤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7판-8면-02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1-ㅁ-02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