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욱(朴鳳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2901657
  • 전몰일자 : 19521107

공훈사항

박봉욱 일등상사는 1925년 6월 22일 출생했다(출생지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고자 1949년 2월 11일 제2여단 제18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제2사단 제5연대로 전속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5연대는 의정부, 창동, 말죽거리, 과천, 안양 일대 전투에 투입되어 격전을 치르고, 문의-보은-청주로 축차적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펼쳤다. 연대는 7월 25일 해체되었으나, 8월 20일 민부대에서 제5연대로 개편되었고 제3·8연대와 함께 제7사단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연대는 군위, 영천 전투에 투입되었고, 영천을 탈환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을 지켜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경주-안동-문경-수안보-충주-장호원-평강-곡산-평양 북방을 거쳐 11월 초 개천 동쪽의 비호산 일대에서 중공군 제38군단과 혈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최초로 승리하는 부대가 되었다. 연대는 묘향산 일대 전투에서 중공군의 제2차 공세에 밀려 11월 27일 철수를 개시하여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의 38도선까지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연대는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때부터 1951년 5월의 중공군 제5차 공세 때까지 중동부 축선의 하진부리-평창-영월-인제 선을 오르내리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유엔군은 5월 말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연대는 8, 9월 동안 양구군 백석산과 그 남쪽의 917고지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백석산 탈취에 실패했다.
사단은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군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있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연대는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한 중공군의 2차례에 걸친 공격을 격퇴하며 동 고지를 지켜냈다.(제1차 전투 : 1951. 12. 25~28, 제2차 전투 : 1952. 2. 11~13) 이후 연대는 위력수색과 매복, 교란작전을 지속했다. 박 일등상사는 1952년 11월 7일 소대원을 이끌고 매복작전 수행 중에 적의 기습적인 사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욱 일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06묘역-6판-332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4-ㄷ-03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