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용(박봉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23878
  • 전몰일자 : 19510208

공훈사항

박봉용 일병은 1928년 12월 9일에 경상북도(現 대구광역시) 군위군 효령면 고곡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던 1950년 9월 20일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수색대는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 및 보고하거나 지휘소를 습격하고 탄약고 등 주요시설을 폭파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박봉용 일병이 수색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 중에 있었다. 제5사단은 10월 15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지역 후방지역작전에 투입되어 아군 6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적 936명을 사살하고 126명을 생포하는 등의 전과를 올리면서 임무를 완수했다.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많은 부대들이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철수함으로써, 사단은 12월 5일경에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배치하여 철수하는 부대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그 후 사단은 12월 13일부로 춘천 북쪽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개시하여 사단의 후방을 차단했다. 1월 2일 밤에는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박봉용 일병은 분대원과 함께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북한군 제10사단 병력들이 제천-단양-안동까지 침투하자 문막 일대에서 제천-영월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전환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 좌측 전방 제36연대가 강력한 적의 저항으로 진출이 곤란하자, 사단은 2월 7일 제36연대를 지원하기 위해 예비인 제35연대를 좌측 전방에 투입함으로써 3개 연대 병진대형으로 공격을 재개했다. 박봉용 일병은 분대원과 함께 적 탄약고를 파괴하려고 적진에 침투 중 1951년 2월 8일 횡성 부근에서 적 경계병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용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32면-1726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ㅁ-01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