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용(朴奉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4209
  • 전몰일자 : 19500914

공훈사항

박봉용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대봉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10월 중순, 서울 용산의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4월 19일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고, 사단 예비로서 교육훈련과 부대정비에 주력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박봉용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 본대는 원주에서 기차로 출발하여 6월 26일 새벽 5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이후 연대는 제7연대를 증원하여 춘천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6월 27일에 홍천 방면의 제2연대를 증원하여 위기를 극복한 후 6월 30일 오후에 원주로 철수했다. 제19연대는 7월 1일 야간에 이천지역으로 긴급히 투입되어 북한군 제15사단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7월 4일에 진천으로 철수하였고, 7월 9일에 수안보로 이동하여 사단에 합류했다. 이후 제6사단은 7월 12일 조령과 이화령을 포함한 문경지역 방어에 돌입하여 문경-점촌-함창 축선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을 맞아 7월 31일까지 지연전을 실시했다.
박봉용 일병이 소속된 제6사단은 8월 1일 새벽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양곡동간 능선 일대를 점령하여 8월 6일부터 계속되는 북한군의 공격을 수차례 격퇴했으나, 결국은 역부족으로 진지에서 철수하여 선돌주막 남쪽의 236고지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 장병들은 계속되는 북한군의 공격을 맞아 8월 13일에 군위-의흥을 거쳐서 매봉산과 산운동 일대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북한군 제1사단은 8월 15일부터 전차로 증강하여 제19연대 방어 정면에 공격했다. 연대 장병들은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8월 21일 야간에 민 부대에 방어진지를 인계 후 사단 예비가 되었다. 그리고 북한군 일부가 8월 27일에 화산 및 조림산을 무혈점령하여 신녕 지역이 위험에 처하자, 이날 연대는 신속히 신녕 지역으로 투입되었다.
박봉용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8월 28일부터 9월 4일까지 조림산을 공격했으나, 탈환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인접의 제8사단에서 영천을 적에게 빼앗기는 위기가 발생했고, 이에 연대는 상급 부대 명령에 의거 9월 5일에 제8사단을 증원하기 위해 영천 지역으로 투입되어 9월 6일부터 금호강 북쪽에서 영천역과 완산동 방향으로 공격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했다. 이후 영천전투를 승리로 장식했고, 연대는 9월 12일에 사단으로 복귀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9월 14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용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8판-2면-23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ㅅ-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