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식(朴奉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13022
  • 전몰일자 : 19510813

공훈사항

박봉식 일병은 경상남도 창원군 천가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쌍방간에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4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봉식 일병은 임진강 전투에 투입되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4월 28일 북한군 제8사단과 금촌, 동거리 일대에서 지연작전을 전개하여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으나 전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서울 외곽으로 철수하였으며, 29일에는 화전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였다. 박 일병과 장병들은 파평산에서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을 지연시켰다. 이후 5월 16일 중공군이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지만 서부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38도선 부근의 새로운 전선(임진강구-연천-문산-율곡리)에서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6월 말 박 일병은 연대병력과 함께 동거리-내화산을 목표로 원당리 일대의 정찰기지를 확보 중이었으며 삼송리-봉일천-동거리를 연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어 고봉산 부근에서 경미하게 저항하는 적을 격퇴하고 일산을 경유 금촌으로 진출하였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공격이 부진하였다. 이때 적은 삼송리-봉일천 도로를 통제할 수 있는 관산리 일대의 유리한 지형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박격포 사격으로 공격을 극력 저지하였다.
7월에 접어들어 박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자체 정찰 활동과 적군의 주요 지역에 대한 탐색 활동을 강화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심한 장마로 인하여 기상이 악화되고 시계가 제한되어 통신이 곤란할 뿐만 아니라 도로가 침수되어 부대기동이 어려웠고 포병사격의 유도는 물론 항폭지원 역시 곤란하였다. 이로인해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박 일병은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봉식 일병은 1951년 8월 13일 금곡리 부근에서 정찰 활동을 하던 도중 매복해 있던 적의 기습사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4-ㅂ-00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