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식(朴鳳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6601407
  • 전몰일자 : 19501227

공훈사항

박봉식 이등중사는 충청북도 진천군 봉양읍에서 1931년 11월 5일 출생하였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이등중사는 1949년 12월경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제8사단 제21연대는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을 개시하여 1950년 10월 8일 38도선을 통과하여 북한지역 깊숙이 진출하였지만 1950년 11월 9일부터 대대적인 중공군의 공세에 직면해 있었다.
박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1연대는 강릉군 주문진에 주둔한 제10연대를 후위에서 지원하는 한편, 후방에 침투한 북한의 무장유격대를 토벌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21연대 장병들이 후방에서 무장유격대 토벌작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전방의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에 기습남침을 당했다.
이에 제8사단은 묘향산 동쪽의 영원과 맹산 지역에서 방어태세를 강화하여 중공군 제42군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유엔군사령부는 중공군의 제1차 공세가 끝나고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중공군이 또다시 조직적인 공격을 가해오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시키는 계획을 수립해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단행했다. 그 중 제21연대는 형제봉-관리 전투에 참가하여 대규모의 중공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진지의 일부를 잃고 맹산 북쪽의 소가래봉으로 탈출했다.
이때 맹산이 위협받게 되어 제21연대는 측방으로부터 침투하는 중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지연전을 펼쳤다. 그 결과 제8사단은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삼동에서 38도선을 향해 철수를 했고 율리, 수안, 신계, 시변리를 경유하여 토산을 향하여 진격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7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번의 방어 전투를 실시했다. 중공군은 제126사단을 동부 산악지대로 우회시켜 맹산 동북쪽 애창천 계곡, 즉 사단의 배후로 침투시켰다. 하지만 수색 정찰로 이를 확인한 제21연대는 연대의 애창 방어진지를 우회하여 맹산에 집결한 중공군과 교전하였고 그 결과 중공군과 제21연대 모두 일부 병력이 분산되었다.
철수 이후 부대를 재정비한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12월 24일부터 이듬해 1월 6일까지 강원도 춘천시에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방어했다. 중공군 제66군 소속 3개 사단이 국군 제8사단 방면으로 남하했다. 제21연대는 혹한의 상황에서도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며 적에 대한 지연전을 실시했으나 이 과정에서 박 이등중사는 1950년 12월 27일 중공군의 포격으로 인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식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0-ㄴ-05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