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식(朴鳳湜)

  • 군별 : 육군
  • 계급 : 병장
  • 군번 : 0152773
  • 전몰일자 : 19520115

공훈사항

박봉식 병장은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초순경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1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봉식 병장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제2사단은 의정부, 포천, 홍천, 철원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할 때, 사단은 동두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방어편성 중에 있었다. 마침내 12월 3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로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1951년 2월 13일 안동으로 이동한 후 일월산-보현산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실시했다.
그 후 전투력을 복원한 사단은 4월 28일에 청평으로 이동하여 이곳에서 중공군의 5월 공세 저지하고, 5월 24일부터 청평-가평 도로 축선을 따라 38도선을 향해 공격하여 6월 15일에는 현재의 휴전선까지 진출했다. 전선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한편 공산군이 이 시기를 이용하여 전투력을 증가하자, 유엔군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진지 전방의 고지에 대해 공세적인 행동을 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사단은 8월 초에 745고지를 탈취했고, 10월 13일부터는 김화-금성 진격작전을 실시하여 최종 목표인 522고지를 8월 18일에 탈취했다. 박봉식 병장이 소속된 제31연대는 사단의 예비연대로 주공인 제17연대를 후속하다가 초월공격하여 목표를 탈취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사단 장병들은 진지보강공사와 방어진지 전방에 대한 수색정찰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박봉식 병장이 소속된 소대는 1952년 1월 6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정찰을 출동했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교전하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부상을 입고 서울특별시 삼청동에 위치한 제36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는 이 병원에서 정성스럽게 치료를 받았으나 1월 15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식 병장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6면-2807)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7-ㄲ-032)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