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순(朴鳳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6866
  • 전몰일자 : 19510315

공훈사항

박봉순 일병은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면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박 일병은 자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그는 1950년 12월경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병참중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11월 30일 중공군의 참전으로 철수명령을 받아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구룡포, 묵호, 부산에 상륙하여 차기 작전 준비 중인 상황이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사단은 북한군 제5군단의 압도적인 공격에 밀려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2월 5일 미 제10군단이 라운드업 작전을 전개하여 반격을 했고, 이때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2월 10일 횡성 동북방에 투입되었다. 2월 11일 중공군은 횡성-원주 축선에 전력을 집중하여 2월 공세를 감행했다. 사단은 중공군 제197사단과 북한군 제5군단의 전진을 지연시키며 횡성-원주 남동쪽- 제천 북방 성남리로 철수했고, 2월 18일 적의 공세는 중지되었다.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2월 21일부터 킬러작전을, 3월 7일부터 31일까지 리퍼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사단은 성남리→하진부리→현리로 진격을 했고, 적의 완강한 저항을 물리치고 3월 28일까지 38도선 상의 현리-하서림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부대 이동이 빈번한 상황에서 예하부대에 적시적인 보급지원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박 일병은 노무자들을 적절히 통제하며 제때 보급과 급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왔다. 하지만 그는 이 반격전에서 예하부대에 보급 추진 중, 적의 습격을 받고 3월 15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9판-6면-04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ㅁ-07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