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수(박봉수)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6600771
  • 전몰일자 : 19501127

공훈사항

박봉수 하사는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번천리에서 1927년 1월 16일에 출생하였다. 박 하사는 1949년 7월 25일에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가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1950년 3월 17일 07:30경 제21연대는 삼척군 도계읍 점리 민가에 공비 2명이 침입하여 식사 중이며 마을 뒷산에 70명이 은거 중이란 주민의 신고가 삼척경찰서에 접수되었다. 이에 따라 현장과 근거리인 삼척군 노곡면 주지리에 위치하던 제16연대 1개 소대가 현지로 출동하였다. 제8사단 제21연대는 6·25전쟁 발발 당시 강원도 동해안 지역의 38도선 경계를 담당했다.
이후 제8사단 제21연대는 1950년 10월 8일 38도선을 통과하여 북한 깊숙이 진출하였지만 1950년 11월 9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세에 직면했다. 이에 제8사단은 묘향산 동쪽의 영원과 맹산 지역에서 방어태세를 강화하여 중공군 제42군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유엔군사령부는 중공군의 제1차 공세가 끝나고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중공군이 또다시 조직적인 공격을 가해오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시키는 계획을 수립해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단행했다. 그 중 제21연대는 형제봉-관리 전투에 참가하여 대규모의 중공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진지의 일부를 잃고 맹산 북쪽의 소가래봉으로 탈출했다. 탈출을 완료한 제21연대는 매재령의 차단 진지를 돌파한 후 북창을 경유해 가창으로 철수하기에 이른다.
이때 맹산이 위협받게 되어 제21연대는 측방으로부터 침투하는 중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지연전을 펼쳤다. 그 결과 제8사단은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삼동에서 38도선을 향해 철수를 했고 율리, 수안, 신계, 시변리를 경유하여 토산을 향하여 진격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1월 27일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또 한번의 방어 전투를 실시했다.
중공군은 제126사단을 동부 산악지대로 우회시켜 맹산 동북쪽 애창천 계곡, 즉 사단의 배후로 침투시켰다. 하지만 수색 정찰로 이를 확인한 제21연대는 연대의 애창 방어진지를 우회하여 맹산에 집결한 중공군과 교전하였고 그 결과 중공군과 제21연대 모두 일부 병력이 분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박 하사는 1950년 11월 27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수 하사의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593 국)을 추서하고 그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ㄹ-03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