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수(朴奉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19638
  • 전몰일자 : 19510428

공훈사항

박봉수 일병은 경상남도 고성군 율대리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박 일병은 1950년 9월경에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전입할 무렵, 제8사단은 1950년 9월 국군 총반격 작전에 합류하여 서울, 연천 남방, 철원, 곡산의 잔적을 소탕한 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아군은 계속 북진하여 11월 9일 덕천 탈환 후 구장으로 진출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지연전을 펼치며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의 제1차 공세 이후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중공군이 조직적인 공격을 하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한다는 계획에 따라 1950년 11월 24일 총공세를 계획하고 북진하기 시작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12월 1일 병력과 장비가 열세한 와중에 경기도 연천 부근의 요충지인 520고지를 향해 돌진하여 점령하였다. 하지만 이내 곧 매복해 있던 적군에 포위당했으나 기지를 발휘하여 포위를 뚫고 철수하는데 성공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강원도 화천군 내평리에서 적군을 대적했으며, 정면으로 중공군 3개 사단이 진격해왔다. 장병들은 진지 구축도 불가능한 혹한에서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며 적에 대한 지연전을 실시했다.
아군은 전력을 가다듬어 2월 5일부터 국군 제5사단과 함께 홍천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지만 중공군의 저항에 봉착했다. 이후 국군은 5일간 제병협동작전을 실시하였으나 전선돌파에 실패했고, 1951년 2월 12일 적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제8사단은 아군의 증원을 기다리며 방어했지만 아군 전선에 대대적인 포격이 가해져 모든 연대가 포위상태에 들어가 제8사단은 주포리로 지휘소를 옮기며 철수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부대 정비 후 1951년 4월 공비토벌작전에 참여했다. 아군은 금산지구 일대의 적을 포착하고 섬멸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해 581고지와 700고지를 점령했으며 수색을 통해 잔적을 색출해냄으로써 큰 전과를 세우고 금산지구 공비 토벌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일병은 1951년 4월 28일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수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6판-5면-12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ㄴ-00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