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섭(朴鳳燮)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01782
  • 전몰일자 : 19500815

공훈사항

박봉섭 하사는 충청북도 괴산군 증평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북한군이 소백산맥 선까지 남진하면서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15일 육군에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제5신병교육대에서 간략하게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조교요원으로 배치되었다.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16일부로 각 편성관구사령부 예하에서 무기와 장비 보충이 없는 상태에서 신편(신병 모집) 중이던 연대들을 신병교육대로 개칭했다.
이에 따라 전남편성관구사령부 예하 제15연대가 제5교육대로 개칭되어 광주에서 대구로 이동하여 경북편성관구사령부 통제를 받게 되었다. 그 이후 8월 14일에 육군본부 직할로서 대구에서 제1훈련소가 창설되었고, 8월 26일 제1훈련소에 제1·2·3·5·6·7·8·9교육대가 통합 편성되었다.
박봉섭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소백산맥 선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하자 낙동강 선에서 최후방어전을 펼치고자 했다. 유엔군은 8월 1일부로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여 최후의 방어에 임했다. 8월 중순 이후 전선이 왜관-수암산-유학산-군위-보현산을 잇는 대구 북방에 형성됨으로써 이에 호응하여 대구 지역에 대한 북한군 정찰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더욱 극심해졌다.
당시 대구에는 정부기관과 육군본부, 美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등이 밀집되어 있어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이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대구방위사령부는 신병교육대 교관 및 조교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들의 활동에 대응했다.
박봉섭 하사는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때때로 기동타격대로 편성되어 적 게릴라 소탕작전에 앞장서곤 했다. 8월 15일 적 게릴라가 제1훈련소를 습격하자 박봉섭 하사와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는 이 소탕작전에서 격멸조장으로서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적 게릴라와 교전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섭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7판-4면-17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1-ㅅ-014)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