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섭(朴鳳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9220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박봉섭 일병은 경상남도 마산시 창포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 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0년 12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당시 국군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봉섭 일병 역시 간단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박봉섭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무렵 수도사단은 백암-청진 선으로 진출하여 두만강 진출을 목전에 두었다.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청진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부거로 진출하고 있었다. 수일 전까지만 하여도 군단 정면의 적정은 경미하였으나 중공군의 2차 공세가 시작되면서부터 이 지역에서도 북한군이 반격해 오는 등 서서히 적정이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박 일병과 같이 입대한 신병들이 전투에 투입되어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전사하는 사례도 허다하였다. 군번은 고사하고 부대원 명부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중대장은 물론 소대장이나 분대장이 소속 대원의 이름을 익히기도 전에 전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박 일병은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신병에 불과했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봉섭 일병은 1950년 12월 1일 청진 부근 전투에서 매복해 있던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섭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0판-8면-17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ㅅ-02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