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석(朴鳳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4028
  • 전몰일자 : 19510120

공훈사항

박봉석 일병은 전라북도 김제군 김제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경 육군에 입대하여 제1007부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군은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없는 상태에서 절대적으로 열세한 전투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전쟁 발발 첫날 전방 진지들이 돌파당했다. 국군은 가용한 예비부대들을 의정부 축선과 문산 축선에 투입하여 수도 서울을 방어하려 했지만 적의 전차를 막지 못해 전선을 돌파당하고, 6월 28일 결국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했다. 국군은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편성하고, 철수하는 병력을 수습하여 한강방어선에서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적의 공격을 지연했다.
7월 초순 미군이 참전함에 따라 유엔군이 구성되었고, 유엔군은 금강 선-소백산맥 선으로 축차적인 지연전을 전개했다. 북한군이 아군 방어선을 돌파하여 계속 남하함에 따라 유엔군은 8월 1일부터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하여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8·9월 공세를 물리침으로써 국가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9월 15일 시행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유엔군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고, 20일 평양을 탈환한 후, 10월 하순에는 한·중 국경선 부근까지 북진했다. 하지만 중공군이 참전하고, 함경남도 운산과 청천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2차 공세에서 큰 피해를 본 유엔군은 38도선으로 철수하여 전열을 재정비하게 되었다.
12월 31일 중공군 제3차 공세가 시작되었고, 유엔군은 ‘1·4후퇴’를 단행하여 37도선 일대로 철수하여 공산군과 대치했다. 이 일대에서 유엔군은 공산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이어갔다. 이러한 전투 과정에서 박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1951년 1월 20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5-ㅌ-01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