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만(朴奉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18614
  • 전몰일자 : 19530428

공훈사항

박봉만 하사는 1927년 12월 23일에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4월 9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병으로 차출되어 제7사단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봉만 하사가 전입했던 시기인 1952년 5월 중순, 미 제7사단은 철원평야 동쪽의 중가산에서부터 김화 북쪽 하감령에 이르는 지역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반면 중공군 제45사단은 오성산에서 김화로 뻗어 내린 능선에 위치한 저격능선(580고지)과 삼각고지(598고지)에 전초를 운용했다. 이 전초는 아 진지를 감제 관측할 뿐만 아니라 김화 방어에도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이에 유엔군사령부 차원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이 고지에 대해 공격하기로 했다.
박봉만 하사가 소속된 미 제7사단은 10월 14일부터 방어정면의 삼각고지를 공격했고, 국군 제2사단은 인접에서 저격능선을 공격했다. 이로써 김화 북방 7㎞ 지점에 위치한 저격능선과 삼각고지에서 중공군 제15군단과 공방전을 벌이게 되었다. 미 제7사단은 삼각고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에 많은 사상자를 내고도 목표를 완전히 탈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 제7사단은 군단장 명에 의거 삼각고지의 작전지역을 국군 제2사단에 넘겨주었다.
미 제7사단은 1953년 초에 방어진지를 강화하며 탐색과 소부대전투만을 반복하고 있었고, 휴전회담도 포로송환 문제로 인해 중단된 상황이었다. 공산군 측은 방어진지 보강과 공세역량에 주력하던 중, 3월 1일 임진강 서남쪽으로부터 사미천 간의 방어선을 공격한 것을 시작으로 3월 26일까지 전초진지를 탈취하려 획책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타결될 전망이 밝은 가운데 쌍방은 상호 진지 탐색전으로 수색작전만 강화했다. 박봉만 하사가 소속된 소대는 4월 28일 방어진지 전방으로 나가 수색작전을 하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만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장병4묘역-416판-5244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1-ㄴ-0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