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림(朴鳳林)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2905292
  • 전몰일자 : 19510129

공훈사항

박봉림 이병은 부산시 서구 대신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박 이병은 1950년 12월 20일 수도사단 제18연대에 입대했다가 제7사단 제3연대로 전속되었다.
이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후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7사단은 춘천 일대의 38도선에서 방어 준비 중인 상황이었다. 38도선으로 철수한 미 제8군은 김포반도-임진강-화천-양양을 연하는 선을 주저항선으로 선정한 후 포천-김화 도로를 중심으로 중서부전선은 미군에, 동부전선은 국군에 방어임무를 부여했다. 한편 육군본부는 12월 15일을 기해 국군 제3사단의 방어종심을 보강하고, 유사시 증원부대로 운용하기 위해 홍천에서 정비 중인 국군 제7사단을 춘천으로 이동시켜 육군 예비로 확보했다. 이후 연대는 춘천 부근의 38도선 일대에 진지를 편성하고 방어준비에 매진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상급부대 계획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그러나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하고, 제2군단이 경북 안동까지 종심깊게 침투함에 따라 연대는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의 서벽리 일대에 배치되어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 일부가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연대는 1951년 1월 19일 만경대산을 공격하여 이를 점령하고, 20일 영월 탈환의 관건이었던 응봉산을 점령했다. 이어 연대는 24일 영월로 진격하여 이를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이병은 선두에서 용감히 진격해 나가다가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월 29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림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1-ㅌ-06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