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래(朴鳳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7369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박봉래 일병은 전라북도 장수군 계남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8년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육본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기습공격을 감행하자 전쟁 개시 첫날인 6월 25일 포천이 T-34 전차를 앞세운 북한에게 함락되고, 6월 26일에는 의정부마저 함락되게 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직할부대를 전투부대로 동원해 의정부 축선에 투입했다. 그 일환으로 6월 26일 저녁 육본 교도연대를 비롯하여 박 일병이 소속된 육본 직할부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하여 창동 방어선에 배치된 국군을 지원하도록 했다. 국군은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절대적인 전투력의 열세로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한강선 방어 작전을 전개했다. 한강방어선 전투에서 박 일병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박 일병은 8월 하순경 부상에서 회복되어 육군병참단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많은 부대가 증·창설되었다. 육군본부는 이들 부대들의 후방 보급지원 및 병력 수송을 위해 9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부대로서 제1자동차대대를 육군병참단 관하에 창설했다. 이때 박 일병은 동 대대로 전속되어 낙동강방어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국군 부대에 대한 보급지원과 병력 수송에 일익을 담당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유엔군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전환했고,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북진했다. 이에 따라 병참선이 북한 지역까지 확장되었고, 수송소요도 대폭 늘어 박 일병은 눈코 뜰 새 없이 불철주야로 임무수행에 앞장섰다.
수송 소요가 늘어나면서 국군은 수송부대를 확장했다. 이에 따라 1951년 4월 18일 국본 일반명령 제77호에 의거 제1자동차대대가 제225자동차대대로 개칭되었고, 계속 수송부대들이 증·창설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박 일병은 1951년 6월 25일 동해안의 국군 제1군단에 보급지원차 이동하다 적의 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10판-5면-13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9-ㄲ-01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전사자 명부에는 소속이 제255수송대로 기록되어 있으나, 동 부대는 없는 부대이므로 유사한 제225자동차대대로 수정하고 전몰일자도 동 대대 창설 이후인 1951-06-25로 수정하여 작성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