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득(박봉득)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46595
  • 전몰일자 : 19510427

공훈사항

박봉득 일병은 1920년 2월 29일에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당시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월 31일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6포병대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포병대대는 1950년 11월 26일부로 제9사단에서 제5사단으로 예속 변경되어 기동부대 화력을 지원하는데 주력했다.
박봉득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했으나, 홍천 우측방의 목표 점령을 앞둔 상황에서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사단은 2월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방어진지에서 철수를 개시하였으며 점령하여야 할 원주-평창선보다 남쪽으로 계속 철수하여 제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의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단양-풍기 간의 주보급로 경계임무를 수행하면서 부대를 정비하면서 수색정찰 활동을 강화하고 있었다. 사단은 3월 3일에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3월 7일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 위치한 태기산(1261고지)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3월 14일에는 적의 최후 거점인 태기산을 점령하고 신대리-백운동을 잇는 선으로 진출했다. 다음날 사단은 북쪽의 운무산-흥정산을 잇는 선으로 진출하면서 최종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4월 초순까지 부대정비와 위력수색에 주력했다.
박봉득 일병이 소속된 제5사단은 4월 10일 공격을 개시하여 4월 19일에 목표인 인제 지역을 점령하고 그 북방 봉화봉과 월학리 일대로 진출하면서 캔자스선을 점령했다. 그러나 4월 24일 전선조정을 목적으로 인제를 적에게 넘겨주었지만 적이 공격을 중지하고 급편방어로 전환함에 따라, 사단은 4월 25일 오전에 인제를 공격하여 재탈환했다. 그 후 5월 초순까지 쌍방 간에 포격전만 계속되었고 전투는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박봉득 일병은 포반원으로서 북한군 집결지에 포탄 사격을 하다가 4월 27일 기습 침투한 적 침투부대와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득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32면-1725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4-ㄴ-03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