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길(박봉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2128
  • 전몰일자 : 19510630

공훈사항

박봉길 일병은 경상북도 영일군 청하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총공세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던 1950년 12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봉길 일병은 임진강 전투에 투입되었다. 박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북한군의 주공이 예상되는 고랑포 정면 임진강 남쪽의 장파리-마포리-도감포 일대에 주저항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1950년 12월 31일 임진강 남쪽에 교두보를 확보한 중공군은 후속부대를 도하시켜 연대를 추격하기 시작하였고, 또 일부 중공군은 적성 남쪽 진지로 접근하며 추격해왔다. 이로인해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사격도 하지 못한 채 방어진지 일부를 돌파당하였다. 부대 장병들은 밤새도록 돌파구 확대를 기도하는 중공군을 맞아 총력전을 펼쳤다.
박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1월 31일부터 미 전차의 지원하에 2개 대대 병진대형으로 안양 남쪽의 수리산-모락산을 공격하여 개시 5일 만에 치열한 백병전을 치른 끝에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서울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박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3월 15일 제6중대의 도하를 시작으로 각 대대의 일부 병력만 도하시켜 적정을 탐지하도록 한 다음, 16일 한강을 도하 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 전역을 장악하였다.
제1사단은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박 일병과 연대병력을 문산 축선에 투입시켰다. 곡릉천 서쪽의 죽원리와 지영리 일대로 진출한 연대는 오후 5시경 곡릉천을 도하 북동쪽으로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봉일천-삼송리 도로 동쪽의 248고지 일대에서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좌절되었다. 그러나 다시 야간공격을 기도하여 자정 무렵에 목표고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임진강 북쪽에서 강력한 정찰활동으로 군단의 좌측방을 엄호한 사단은 6월 3일 공격 준비를 완료한 후 전곡-연천 도로를 따라 김화를 공격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봉길 일병은 1951년 6월 30일 도라산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8판-3면-01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111-ㅌ-0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