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기(朴鳳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3211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박봉기 일병은 경상남도 동래군 정관면(現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전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1950년 2월 하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육군직할 기갑사단에 배치되었다. (*기갑사단은 당시 未 존재 부대로서 기갑연대로 조정)
한편 기갑연대는 1949년 11월 15일부로 수도경비사령부로부터 육본 직할로 배속이 전환되었다. 당시 기갑연대는 M8장갑차 27대를 장비한 장갑수색대대, 마필 300대가 편성된 기병수색대대, 도보수색대대 등 3개 대대로 편성되어 육군직할 독립부대로 운용되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부족한 장비와 병력으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직할부대를 전투부대로 동원해 의정부지구에 중점을 두면서 서울방어를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육군은 우선 육군본부 직할의 모든 재경부대를 동원해 전방의 제1사단과 제6사단,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증강했다.
따라서 6월 25일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제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한 데 이어 오후에는 제18연대(-1)마저 추가로 배속했으며, 제8연대를 제6사단에 배속해 가평지구로 투입했다. 또한 서울 특별연대는 제1사단에, 전투경찰 1개 대대가 배속된 육사생도대대는 제7사단에, 포병학교 제1교도대대는 제1사단과 제6사단 그리고 제7사단에, 제2교도대대는 제7사단에, 이에 박봉기 일병이 소속된 독립기갑연대 제1대대는 제1사단과 제6사단 그리고 제7사단과 제8사단에 배속했다. 6월 26일 저녁에는 육본 장교연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시켜 창동 지역에 배치했다.
특히 국군 장병이 보유하고 있던 2.36인치 로켓포로는 북한군의 T-34전차의 장갑을 관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대부분의 방어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옹진반도에 배치된 국군 제17연대가 6월 25일 아침에 붕괴되자 육군본부는 황급히 김포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독립기갑연대 혼성대대 등 가용부대를 선정하여 김포반도에 배치했다.
그러나 김포반도를 공격하는 북한군을 막아내기에 기갑연대 혼성대대 등 임시 편성 부대로는 역부족이었다. 박봉기 일병은 1950년 6월 27일 김포지역전투에서 치열한 백병전을 펼치던 중 북한군의 집중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기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위하여 그의 위패(22판-7면-13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9-ㅍ-015)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