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근(朴奉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216240
  • 전몰일자 : 19501011

공훈사항

박봉근 이병은 1929년 9월 29일 전라남도 여천군 남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8일 육군에 입대하여 육본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국군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 이병 역시 간단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박봉근 이병이 전선에 투입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한 후 1950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공세로 전환한 후 북진작전에 돌입하였다. 이어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계속해 한・만 국경에 도달하였다.
그 후 박 이병과 부대원들은 38도선 북쪽의 20km 지점인 동해안 가도의 양양-간성에 진출하는 등 동해안 도로를 따라 북상 중이었다. 이 무렵 간성 방어를 실패한 북한군은 고성-통천-고저 선에서의 축차저항을 기도하였고, 일부 병력은 오대산. 설악산 등 산악으로 잠입하여 후방보급로를 차단하며 유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박 이병과 부대원들은 원통-양구로 공격하였으며 동해안으로 진격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기동로의 전환은 동해안 도로상에 2개 사단 6개연대의 부대가 집중되는 취약점을 조금이라도 덜고 태백산맥 동측에서 준동하는 패잔병을 소탕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진지에 의지해 웅크리기보다는 앞장서서 적을 공격하는 용맹을 발휘했다. 전투경험이 없는 신병임에도 불구하고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박봉근 이병은 1950년 10월 11일 부여된 전투근무 지원임무를 수행하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근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06판-2면-04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3-ㅈ-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