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규(朴鳳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6827
  • 전몰일자 : 19501230

공훈사항

박봉규 일병은 경상남도 동래군 북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사단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봉규 일병 역시 간단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박봉규 일병은 흥남 철수작전에 투입되었다. 박 일병과 장병들은 12월 14일 북청과 이원에서 함흥과 흥남으로 철수하던 중 벌어진 치열한 교전에서 북한군 병력을 저지한 후 17일 흥남에서 묵호항으로 해상 철수하였다. 박봉규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도채동-서림-양양 선에 주저항선을 구축하고 북한군의 정면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군은 정면공격보다는 오대산과 설악산으로 연결되는 산악지형을 발판으로 사단의 후방으로 진출하여 후방을 교란시키는 작전을 기도하였다.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12월 30일 사단 후방지역인 대사리로 진출하여 이 일대에 출몰한 북한군 약 1,000명을 포착하여 화력전에 이은 백병전을 전개한 끝에 이들을 격파 분산시켰다. 박 일병과 연대병력은 분산된 북한군을 추격하여 하진부리까지 진출하였으나 분산 탈주에 능한 북한군을 추격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그는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신병에 불과하였으나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박봉규 일병은 1950년 12월 30일 대사리 부근 전투에서 탈주하던 북한군을 추격하던 중 매복해 있던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0판-3면-15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ㅇ-03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