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구(朴鳳九)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744764
  • 전몰일자 : 19530709

공훈사항

박봉구 일등중사는 1928년 5월 20일에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9월 15일에 진해의 육군 제7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2사단 제32연대에 배치되었다.
박봉구 일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해 왔을 때인 10월 하순에 제2사단은 적근산-육단리에 이르는 선에 주방어진지를 점령하고, 금성 서남측 직목동 지역에 전초진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후 제2사단은 1952년이 되어 몇 번의 부대 이동을 거쳐 6월 30일에는 미 제40사단의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당시 유엔군은 휴전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공세적인 행동을 하기로 했다.
이에 제2사단 제17연대가 10월 14일에 김화 북쪽의 저격능선을 강력한 화력지원을 받으며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후 중공군의 역습으로 다시 빼앗기고, 빼앗는 치열한 전투가 11월 24일까지 42일 동안 계속되었다. 제17, 제32연대가 교대로 공격과 방어를 했다. 박봉구 일등중사가 소속된 대대는 11월 24일에 저격능선을 방어하고 있었는데, 중공군의 강력한 공격을 격퇴함으로써 저격능선을 사수했다. 이후 중공군은 큰 피해를 보고 더는 공격하지 않았다.
제2사단은 12월 1일부로 다시 군단 예비로 전환되면서 사창리로 이동하여 야외기동훈련(FTC훈련)을 하다가, 12월 30일에 미 제3사단 작전지역인 철원 고대산 전방의 독서당리, 중강리, 하진명동 일대를 인수했다. 박봉구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사단의 좌측연대로서 하진명동 일대에 배치 되었다. 이후 전선은 1953년 되어서도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32연대는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쳐 1953년 6월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281고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중공군 제73사단은 6월 29일에 화살머리고지에 대해 공격을 감행하여 탈취했다. 제31연대는 최초 방어에 실패하여 적에게 화살머리고지를 빼앗겼으나, 다음날인 6월 30일에 제17연대와 박봉구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32연대가 즉각적인 역습으로 다시 화살머리고지를 탈취했다. 중공군은 7월 5일 야간부터 다시 화살머리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2차 공격을 개시했다. 그가 소속된 대대는 7월 11일까지 치열한 전투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했다.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7월 9일에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구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21-ㄹ-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