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봉관(朴奉寬)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위
  • 군번 :
  • 전몰일자 : 19511203

공훈사항

박봉관 경위는 1917년 5월 25일 제주도 북군 한경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제주도 북군 구좌읍에서 전사했다.
한라산 근거지에서 비밀리에 조직을 구성하고 전투준비를 하고 있던 공비들은 1948년 10월 1일 소련 혁명 기념일을 기하여 다시 대규모 시위를 하며 도순·오동리 경찰지서를 습격했다. 또한 제주도 전역에서 습격, 약탈, 살상 등 만행이 자행되어 하루 동안에 55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10월 8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10월 11일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설치했다.
공비들이 제주읍을 기습공격하기 위해 제주읍으로부터 10km 지점에 위치한 고성에 집결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제주도경비사령부는 10월 30일 군병력과 합동으로 작전을 실시하여 공비 200여 명을 생포했다. 11월 7일에는 제주도 적화를 위해 음모하는 것을 사전에 발견하여 제주도 남로당 지하조직을 일망타진했다.
12월 28일 공비 100여 명이 남제주군 남원면 위미리 마을을 습격하여 식량과 의류를 약탈하고 마을 전체를 불태운 뒤 도주하였다. 이에 현장에 출동한 경찰토벌대는 도주하는 공비 76명을 생포하고 7명을 사살했다.
육군본부는 초목이 무성한 녹음기가 되면 한라산지구의 공비토벌작전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하고 해빙과 동시에 공비들을 격멸하기 위해 1949년 3월 2일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했다. 전투사령관은 효과적인 작전수행과 민·관·군 협조체제를 위해 민보단 1개 소대(25명)와 군인 1개 분대, 경찰 1개 분대로 구성된 민·관·군 혼성부대 수개 조를 편성했다. 민보단 소대는 도내 초·중학교 교사, 군청 직원, 청년단 간부들을 대상으로 1개월에 걸쳐 기초 군사훈련을 실시한 후 필요할 때마다 소집하여 소탕작전에 참여시켰다.
한편, 해병대는 일부 병력을 제주도에 파견하여 제주도 군·경·민 합동전투지휘소를 설치하고 공비토벌작전에 돌입했다. 1950년 12월부터 피난민이 제주도에 몰려들어 그 수가 증가하면서 한라산의 공비들은 종전의 소극적인 전술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여 민심을 교란했다. 그리하여 1951년 1월부터 4월까지 공비들의 출몰횟수는 매월 10회 이상이 되었다. 1월부터 4월까지 박 경위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공비토벌작전에 참가, 20며 명의 공비를 소탕하는 공을 세웠다. 12월 3일 한라산 중턱에 은거지를 둔 공비들이 구좌읍에 내려와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군경부대가 출동하였는데 이때 박 경위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공비들을 소탕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봉관 경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00-ㅈ-04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