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출(朴福出)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K1136659
  • 전몰일자 : 19510303

공훈사항

박복출 이등중사는 1931년 6월 24일에 경상남도 울산군 강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9월 20일에 미 제1기병사단에 배치되었다.
박복출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때, 미 제1기병사단은 왜관 일대의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정면의 북한군 제1, 제3, 제13사단을 공격하고 있었다. 사단 장병들은 9월 30일까지 38도선을 회복하고 10월 8일에 38도선을 돌파하여 10월 19일에 평양을 탈환 후 미 제8군의 예비가 되었다. 유엔군의 선두부대가 압록강까지 진격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할 때, 미 제1기병사단은 철수부대를 엄호하고, 철수 완료 후에는 의정부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미 제1기병사단은 미 제8군의 예비로서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에 조치원까지 내려갔다. 유엔군은 평택-삼척 선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유엔군은 1951년 1월 23일에 울프하운드 수색작전으로 한강선 이남에 적의 주력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1월 25일부터 반격작전으로 썬더볼트 작전(Operation Thunderbolt)을 실시했다. 썬더볼트 작전은 강력한 부대로 신속하게 종심 깊이 실시한 위력수색작전으로 미 제1군단과 제9군단이 전차로 증강된 미군 1개 사단을 투입하여 한강선까지 실시하는 수색작전이었다. 이로써 유엔군은 작전의 주도권을 만회하였으며, 2월 초순에 김포-안양-양수리-지평리-횡성-하진부리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박복출 이등중사가 소속된 미 제1기병사단은 썬더볼트 작전시에 미 제9군단의 예비로 장호원 일대에서 후속하였다. 당시 중공군의 주력은 한강 이북으로 철수했지만, 많은 침투부대가 아군 후방으로 들어와 교란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가 소속된 중대는 3월 3일에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고 박복출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1판-7면-08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ㅎ-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