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재(朴福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10494
  • 전몰일자 : 19501124

공훈사항

박복재 일병은 1927년 7월 29일에 경상남도 부산시 서구 대신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에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9월 10일에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복재 일병이 부대에 배치되기 전, 제17연대는 8월 9일부터 기계-안강 지역에 투입되어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사력을 다해 지키고 있었다. 만약 기계-안강 지역이 돌파당하면 지형상 북한군이 바로 경주-부산으로 진격하여 전쟁이 종결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부대에 도착한 후 연대는 다행스럽게도 9월 13일에 경주 북방의 곤계봉을 탈취함으로써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이후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인천상륙작전에 후속부대로 참가했다.
제17연대는 영광스럽게도 육군 중에서 유일하게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발되어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그리고 연대는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 후 기차로 영등포까지 이동했고, 이후 도보로 신사리까지 이동했다. 연대는 9월 25일부터 신사리에서 서빙고로 한강을 도하하여 남산을 향해 공격하여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환했다.
유엔군 주력이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감행할 때, 제17연대는 서울에 남아 주요시설에 대한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11월 7일에 국군 제2사단이 재창설될 때에 예하 부대로 편성되었다. 제2사단은 포천-평강 일대에서 유엔군의 후방을 교란하던 북한군 잔적 소탕을 위해 투입되었다. 제17연대는 포천 일대에서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과 유엔군 병참선 경계작전을 병행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군 패잔병들은 단순한 공비들이 아니라 지휘체계가 갖추어진 대규모 부대로서 중공군 침공에 호응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후방 교란 활동을 실시했다. 박복재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11월 24일에 북한군 패잔병을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안타깝게도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5판-8면-17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7-ㅌ-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