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양(朴復陽)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99094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박복양 일병은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박 일병은 1951년 3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리퍼작전(3. 7.~3. 31.)을 전개하여 문산~동두천~춘천~현리~양양을 잇는 선까지 진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7사단은 강원도 인제군 부평리 일대까지 진출하여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연대는 공격을 전개하여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부평리, 정자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중공군의 4월 공세가 1주일 만에 중단되자, 국군과 유엔군은 전 전선에서 위력수색작전을 전개하여 5월 9일 김포반도-봉일천-의정부-가평-춘천-인제-속초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에 유엔군은 38도선을 향해 반격을 계획했으나, 적의 공세 징후가 포착됨에 따라 방어로 전환했다.
중공군 5월 공세는 1951년 5월 16일 오후 4시 30분경 제7사단 방어진지에 대한 강력한 공격준비사격으로 시작되었다. 2시간에 걸친 중공군의 공격준비사격으로 사단은 포병진지와 통신시설이 파괴되어 일시에 화력지원체계가 마비되었다. 중공군은 제20군 예하 제60사단과 제27군 예하 제79·제81사단을 사단 정면에 투입하여 인해전술을 전개했다. 사단 장병들은 백병전을 펼치며 결사적으로 적을 저지하려 했으나,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그날 자정 무렵에는 사단의 전방 연대인 제5연대와 제8연대가 대부분의 진지를 탈취당하고 말았다. 이에 미 제10군단장은 5월 17일 새벽에 사단으로 하여금 노네임선(No Name Line: 용문산-홍천-한계령-속초를 잇는 선)으로 철수할 것을 지시했다. 이 전투에서 박 일병은 신병이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지를 지키며 용감히 싸우다가 5월 18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양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5판-5면-14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2-ㅋ-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