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수(박복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0324
  • 전몰일자 : 19500902

공훈사항

박복수 중위는 출생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북한군의 남진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초순경 재소집되었다. 박복수 중위는 당시 예비역 중위였으며 육군직할 서부전선사령부에 배치되었다.
(*전사자 명부에 서부전선사령부는 당시 未 존재 부대로 입대부터 전사 당시까지 6·25전쟁의 전반적인 경과 위주로 기술)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부족한 장비와 병력으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직할부대를 전투부대로 동원해 의정부지구에 중점을 두면서 서울방어를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육군은 우선 육군본부 직할의 모든 재경부대를 동원해 전방의 제1사단과 제6사단,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증강했다. 따라서 6월 25일 수도사령부 예하 제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한 데 이어 오후에는 제18연대(-1)마저 추가로 배속하였으며, 제8연대를 제6사단에 배속해 가평지구로 투입했다. 6월 26일 저녁에는 육본 장교연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시켜 창동 지역에 배치했다.
국군은 철수와 방어로 이어진 수세적인 전투를 전개하다가 일시공격으로 전환해 혼성대대 병력이 동두천을 탈환하고 소요산까지 진출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대규모 반격으로 의정부 방면으로 철수했다. 국군은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수도 서울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한강선 방어 작전을 전개했다.
이후 박복수 중위와 장병들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실시하면서 7월 말에는 낙동강 선에 이르렀다. 유엔지상군은 낙동강 선에서 美 제8군을 주축으로 대구로부터 마산까지 서남부에서, 국군은 대구로부터 포항의 형산강까지 동부에서 적군과 대치하면서 9월 중순까지 낙동강방어선전투를 수행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함으로써 반격으로 전환하여 10월에는 북진작전을 진행했다. 박복수 중위는 낙동강방어선전투에서 중대원을 지휘통제하며 북한군과 교전 중 1950년 9월 2일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수 중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2판-2면-69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3-ㅎ-03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