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수(朴福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19038
  • 전몰일자 : 19521113

공훈사항

박복수 일병은 1925년 9월 1일에 경상남도 동래군 구포읍(現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 공격을 저지하고 있던 1950년 9월 16일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병참중대로 배치되었다.
박복수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재창설 후 10월 13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 토벌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후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1951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이어서 사단은 태기산 전투(3월), 인제부근 전투(4월)에서 적을 격퇴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로써 중공군 5월 공세 때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에 접어들면서 美 제10군단의 강원도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 시, 군단에 배속된 사단은 가칠봉 전투에서 9월 4일부터 10월 14일까지 5,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혈전을 벌인 끝에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냈다. 사단은 이 전선을 10월 20일부로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1952년 1월 12일까지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하면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그 후 사단은 제1군단 배속으로 1월 23일부터 동해안 거진 일대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전선에 투입되었다.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마침내 적 제9사단은 7월 10일 야간 10시에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하여 아군 진지가 피탈되었다. 그러나 사단은 즉각 역습으로 주방어선을 지켜냈으며 11월 초까지 몇 차례의 적 침공을 격퇴했다.
이로써 사단은 現 전선을 11월 10일부로 제15사단에 인계하고 간성으로 이동하여 주변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했다. 박복수 일병은 예하부대의 급식과 보급 지원 중 11월 13일 적 침투부대의 습격으로 분대원과 함께 교전하다가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수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1판-8면-21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1-ㄴ-012)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