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수(朴福洙)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231

공훈사항

박복수 경사는 1919년 2월 22일 전남 나주읍 노안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6년 12월 1일 경찰에 입문했으며, 전몰 당시 전남도경 무안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승주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여 파죽지세로 남진하자 전남도경은 비상경비체제로 전환하고 도내 관할 경찰관서로 하여금 전투태세에 돌입하도록 했다. 무안경찰은 무안-함평, 무안-나주, 무안-목포를 잇는 주보급로 경비, 피난민 이동·통제 구호, 주요 시설 경비,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7월 23일 북한군이 광주를 점령하고 남으로 진격함에 따라 무안·영암·광산·나주경찰은 지연전을 펼치며 장흥에 집결했다. 장흥에 집결한 경찰부대는 장흥을 중심으로 장흥-강진에 저지진지를 구축하여 목포 쪽으로부터의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보성에도 전초진지를 설치하였다.
7월 31일 적 대대병력이 강진-장흥을 향해 공격을 하자 강진·나주·무안경찰부대가 적의 공격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경찰부대는 8월 1일 완도로 철수했다. 무안경찰은 강진·장흥·보성·화순경찰부대와 함께 9월 20일까지 완도 해상유격전을 펼쳐 적 137명 사살하고 아군 143명을 구출하는 커다란 전과를 거두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전선이 북상하면서 경찰관서 수복작전이 전개되었다. 무안경찰은 10월 초 무안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 오열 색출, 주요시설 경비, 잔적소탕작전을 수행했다.
승주에 공비들이 출현하여 민간인을 학살하고 가축과 식량을 약탈하는 일이 발생하자 전남 비상경비사령부는 서남지역의 경찰부대를 출동시켜 공비들을 섬멸하도록 했다. 12월 31일 박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공비들을 소탕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수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ㅇ-00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