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성(朴福成)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158506
  • 전몰일자 : 19510522

공훈사항

박복성 하사는 1931년 6월 26일 서울시 성동구 면목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한 국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후퇴하자 조국을 구하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그는 1950년 12월 3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박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일대로 철수하고 있었고, 영변까지 진출했던 제7사단도 후방으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12월 3일부터 승호리-신계-연천을 거쳐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는 38도선 상에서 물러나 1951년 1월 8일 영월 동북방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연대는 1951년 1월 19일 공격에 투입되어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24일 영월을 탈환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영월을 점령하려는 적을 맞아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 때 연대는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고, 리퍼작전(3. 7.~3. 31.) 때는 평창군 백적산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연대는 공격을 전개하여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신풍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소양강 변의 신풍리 일대에 배치된 연대는 중공군 제79·81사단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백병전을 펼치며 결사적으로 적을 저지하려 했으나,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에는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연대는 이곳에서 적의 돌파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고 공격을 저지했다. 이 전투에서 박 하사는 끝까지 진지를 지켜내며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5월 22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성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위패(04판-1면-14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2-ㅍ-08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