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문(朴福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22117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박복문 일병은 경상남도 사천군(現 사천시) 곤명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던 1950년 9월 중순경 입대하여,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박복문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에 대구에서 재창설되어,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할 때인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했다. 각 연대별로 책임지역을 할당하여 작전을 실시했는데, 제27연대는 포항, 제35연대는 진주, 제36연대는 김천에 주둔하면서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했다. 당시 후방지역에서 활동하는 북한군 패잔병과 좌익 빨치산들은 수시로 민가를 습격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생필품을 약탈했다. 하지만 군과 경찰의 효과적인 작전에 대부분의 남한지역은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박복문 일병이 소속된 제27연대는 적 게릴라가 준동하는 지역을 반복 수색하고 잠복조를 운용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적 게릴라를 색출하여 소탕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포항 북방의 구룡산 중턱에서 300명 규모의 적 게릴라를 포위 섬멸하고 선달산 중턱에서 90명 규모의 적 게릴라를 섬멸하는 성과를 거두면서 후방지역 안정작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했다. 이에 따라 사단은 12월 5일경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 배치되어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 후, 12월 13일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제27연대는 청평 동쪽의 호명산 일대, 제35연대는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 그리고 제36연대는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개시하여 후방을 차단했다. 다음날 밤에는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박복문 일병은 중공군의 신정공세를 받아 방어진지에서 교전하다가 1월 1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문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6판-3면-23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1-ㅈ-06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