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면(朴福眠)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818

공훈사항

박복면 경사는 1930년 5월 2일 전남 강진군 칠량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강진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강진군 마량포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강진경찰은 강진-해남, 강진-목포, 강진-영암, 강진-장흥을 잇는 군 주보급로 경비,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남경찰국은 각 서(署)에서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전북경찰국에 배속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전투부대를 편성했으며, 강진경찰서 병력도 전투경찰로 재편되었다.
하동의 퇴로를 차단당하여 고립된 전남 서남부지역 경찰은 7월 27일 강진부대에 이어 장흥·보성·화순부대가 완도로 철수하여 해상유격전을 전개했다. 당시 완도에는 완도서장 이하 200명이 대한청년단원 100명과 함께 치안을 확보하고 있었다. 완도에 상륙한 전남경찰부대는 완도 경찰병력 300명과 나주 경찰병력 270명, 화순 경찰병력 60명으로 하여금 본부를 방호하도록 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청산도를 비롯한 인접 각 도(道)서를 방어하기 위해 청산도에 주둔시켰다. 또한 영광 경찰병력 40명과 무안경찰서 선박부대 90명을 부산으로 보내어 후방지원을 하도록 조치하고, 강진·장흥 경찰병력은 유격전을 펼치며 적정을 수집하도록 했다.
8월 3일 강진부대 150명은 완도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고금도에 상륙하여 마량포에 진출한 적의 동태를 관찰했다. 8월 5일에는 마량포에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적 10명을 사살하였다. 이어서 8월 7일에는 20명의 특공대를 강진만에 상륙시켜 적정을 수집했다. 8월 15일에는 금당도에 상륙하여 적 5명을 사살하고, 8월 18일에는 평일도에 적 90명이 상륙하여 경찰 5명을 사살하고 3명을 납치했다는 정보에 따라 완도 경찰부대와 합동으로 평일도에 상륙하여 적을 소탕했다. 이날 박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소탕하다가 적의 총탄에 의해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면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ㅍ-02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