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박복만(朴福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201826
  • 전몰일자 : 19500725

공훈사항

박복만 일등중사는 1927년 9월 19일에 충청남도 천안군 천안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8년 1월 1일, 충남 대전의 제2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제2연대는 동년 12월 28일부터 1949년 5월 17일까지 제주도 4·3사건에 투입되었고, 동년 8월 13일부터 11월 15일까지 옹진반도에 투입되었다가 서울 용산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1950년 6월 12일에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홍천으로 이동하여 제8연대로부터 방어진지를 인수해 홍천 북방의 42km 방어 정면을 담당했다.
제2연대 장병들이 제8연대로부터 진지를 넘겨받았을 때, 진지에는 철조망이나 대인지뢰가 설치되지 않았고, 새로 구축할 시간적 여유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전쟁 발발 직전에 남침을 예견하는 북한군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어 장병들의 외출·외박을 통제하면서 고도의 경계태세를 유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의 전면 공격을 받았다.
박복만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경계지역전투(음양리, 막장골, 어론리), 주저항선 전투(어론리, 자은리, 철정리), 최후저항선전투(철정리, 한계리, 성산리)에서 적 자주포를 파괴하기 위해 57mm 대전차포를 운용하고, 대전차포가 없으면 특공조를 운용했다. 또한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반격하는 등 공세적인 전투로 홍천 북방에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제2연대 장병들은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전투력 열세로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그리고 7월 5일부터 남한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방어작전을 실시했으나, 7월 7일 야간에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철수하여 문경 일대로 이동했다. 제6사단은 7월 12일에 조령(19연대)과 이화령(2연대)을 포함하는 문경지역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북한군 제1사단과 이를 증원하고 있던 북한군 제13사단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박복만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7월 16일에 아군의 피해가 증가하자 문경에서 영강으로 철수하여 하천선 방어에 돌입했다. 이후 문경-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중심으로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적들은 7월 25일에 방어의 중앙지대를 돌파하고자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박복만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2545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8-ㅇ-06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